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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7. 00:45

혹시 보는 사람이 있을까.
위의 단어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1999년 10월의 끝날. 나는 군대를 전역했다.
원래대로라면 2000년 대학교를 복학해야했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이었던 나는 2000년 2월 학교를 방문해 휴학신청을 하고
취업을 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
군대가기전 1997년 9월 전까지는 통신이 나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1학년때 고작 처음으로 웹서핑을 처음 해봤을뿐이었고
집에서는 모뎀조차 없는 386컴퓨터를 사용중이었으니까.
군생활하면서 나중에 들어온 후임들에게 야간통신정액제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대하자마자 처음으로 내가 한 일은 일하면서 받은 월급으로 컴퓨터를 산것이다.
아는 사람에게 사면 사기당하기 더 쉽다는 사실은 그때쯤 몸으로 체험해서 얻은 소중한 지식이다.
아무튼 야간정액제를 신청해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느리지만 모뎀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그당시 인터넷으로 한 일이라곤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생생한 내가 인터넷으로 처음 받은 곡은 거리의 시인들이라는 그룹의 빙이라는 노래다.
사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2000년 3월 13일. 3메가가 조금 넘는 곡이었는데
모뎀으로는 정확히 31분이 걸렸다.
뭐 그 후 네달정도 후 ADSL을 신청해서 쓰기 시작해 모뎀생활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모뎀시절 처음해본 것중에 채팅이 있다.
뭐 사실 아직도 독수리타법이기는 한데
그런 내가 채팅을 시도해본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이름도 그리운 네티(띠?)앙 채팅이었는데
누가 들어오면 인사치느라 바쁜데 채 다 치기도 전에 대답이 없다며 그냥 나가버리곤 했다.
그러다 마음이 급해 일단 아무글이나 마구 쳐서 사람이 있음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그분은 지금의 나는 과연 그럴수 있을까 싶은 인내심으로 나를 기다려주었으리라.
내가 타자가 느리니 내가 할 말을 다 쓰거든 글 끝에 @(골뱅이)를 붙이라는 거였다.
한줄로 못 끝날 말을 여러줄 쓰다보면 자기가 언제 긑이 끝나는건지를 모르니
골뱅이가 보이면 자기도 자기말을 하겠다는것이다.

나:안녕하세요 테야입니다@
그분:네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누구입니다@
나:어디 사시는 분이신가요?@
그분: 네 저는 어디어디 살아요@..

지금 쓰면 뭐 20초도 안걸릴 내용이지만
그당시 나는 저걸 쓰는데 한줄에 30초내지 1분이 걸렸던것이다.
기억에 생생한 첫 채팅은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바로 옆에 살고 계셨던 간호사셨고 황선옥이라는 분이셨다.
물론 그 분과의 채팅은 그때 한번뿐이다.
그 분의 이 큰 배려심때문에 아직도 나는 그 분의 이름을 쉽게 잊을수가 없는것이다.
당시 좋지 않은 상황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나는 뭔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상대가
필요했고 형의 추천으로 지오피아라는 곳의 채팅서비스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군대에서 급팬이 되었던 모여성그룹의 팬모임채팅방이 있어서 얼른 들어갔다.
어느 그룹인지 밝히자니 민망해서 대충 흘려 이야기하자면 뭐 이효리가 있던 그룹이다.
그때당시 처음 사용한 아이디는 차마 밝히지 못하겠다.
난 이미 그당시 스물넷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고
주로 방에 오는 친구들은 잘해야 고등학생혹은 중학생들이었고
남녀비율은 반반정도였다.
하면 안될것을 시작했던것인지 나는 점차 빠져들었고
밤새 챗을 하다 출근하기가 일쑤였다.
어린 친구들도 나에게 고민거리등을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답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이말.
이 얼마나 틀린 말인지를.
적어도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될지 몰라도
슬픔은 그렇지 못했다.
처음부터 내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싶어서 시작한 채팅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고민거리는 꺼낼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이 어린 친구들의 고민을 내가 나누어가져서 우리 친구들은 마음이 후련해졌을지 모르지만
그 남은 반은 나에게 계속 쌓여갔던 것이다.
그렇게 빈 마음속에 뭔가가 자꾸 쌓여갈때쯤
여러가지 이유로 그 방에 다시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당시 내나이 스물넷에 18살의 여고생을 좋아하게 된것이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만 알던.. 그저 글로서만 이야기하던 사이였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새벽 다시 오지 않으리라며 방에 있던 아이들에게 인사하고는
그날 정말 서럽게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후로 이젠 나도 뭔가 고민을 좀 털어놓고 싶어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만한 방을 찾아봤다.
그렇게 한맘방(한사람을 위한 마음)을 찾아가게 된다.
2000년 7월즈음인거 같다.
참 내 인생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는 곳이다.
지금도 그 때 만난 사람들이 다니는 세이클럽의 동호회는 가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서로 만나기는 어렵지만
그때를 생각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으로 혹시 오랫만의 누군가로부터 소식은 없을까 싶은 기대감으로 찾는것이다.

이 한맘방의 운영자님(한맘님)은 여자분이시다. 여자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연히 전화통화로 여성분이라는걸 알았다.
이 분이 운영하시는 지오피아채팅방으로 10대들을 위한 방이 있었다.
한사람을 위한 마음은 20~30대방이었고
10대들을 위한 방으로 우리들만의 세상(줄여서 우만세)라는 방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맘님으로부터 우만세를 접어야할거 같다는 이야길 들었다.
사실 한맘방을 다니면서 우만세방도 몇번 기웃거려 이미 그곳 친구들과 친해져있던 상태라
방이 없어지면 어린 친구들이 얼마나 실망할지 알고 있던 상태였다.
고민스러웠다. 처음 경험했던 방에서 얼마나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던가..
알면서도 결국 내가 이어받기로 했다.

사실 오래 운영하진 못했다.
이래저래 그 당시 지오챗같은 cgi방은 저물어가던 시대였다.
이 cgi방의 특성을 말해보자면
웹채팅방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아이디를 쓰고 입장을 하면
한방에서 모든 사람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귓속말도 한방에서 가능했고
글색도 알록달록하고 예뻤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msn이나 네이트온같은 메신저를 통한 1:1대화로
주류가 변해가던 때였고 내가 운영하던 방은 물론이고 한맘방도 
그렇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폴더정리를 하다가 당시 운영하던 방의 호스팅백업을 찾았다.
그리운 아이들 사진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너무 보고 싶을뿐이다.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아직 있을지..

핑클사랑방,한사람을 위한 마음,우리들만의 세상,우만세,알럽핑클,쥬드,별빛,꽃말,이리
누군가가 위의 단어로 검색을 했을때 이 글을 찾고 이 글이 찾던 글이었으면 좋겠다.
너무 그리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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